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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끝나지 않는 소꿉놀이


그들의 끝나지 않는 소꿉놀이

섹시 0 319 2021.07.26 00:36

나와 오빠는 어려서부터 할머니 집에서 살아야 하였다.



무슨 이유인진 모르지만 엄마아빠가 이혼을 하고 우리 남매를 혼자의 몸으로 뒷바라지를 감당하게에 어려웠던



아빠가 시골의 할머니에게 우리 남매의 양육을 부탁하였고 아빠의 딱한 처지를 아는지라 거절을 하지 못 하고



우리 남매를 키운다고 데리고 왔으나 정작 할머니는 인근에 있는 장이란 장을 옷 보따리를 떠돌아다니며 장사를 하였기에



아침에 밥을 해주고 장에 가면 저녁 늦게야 돌아와 저녁을 챙겨 주었기에 집에는 항상 오빠와 난 단 둘이 놀아야 하였다.



또 근처에는 늙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만이 살았고 젊은 사람이라고 해 봐야 마을 입구에 사는



형구 아저씨 내외로서 그 사람 나이는 사십대 초반이었지만 애들이 없어서 우리 항상 외톨이가 되어 함께 지내야 하였다.



더구나 오빠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자 난 진짜 외톨이가 되어 홀로 집을 지켜야 하였는데 그럼 혼자서 쓸쓸하게 소꿉놀이를 하며 지내야 하였다.



그러다가 오빠가 하교를 하여 집으로 오면 난 세상이 모두 나의 것이 된 기분이 들었다.



“오빠야 소꿉놀이 하자 응”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쪼르르 달려가 오빠의 팔에 매달리며 애원을 하였다.



“숙제하고 하자”오빠가 나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면 난 심드렁한 표정으로 땅바닥에 놓인 조개껍질을 발로 차고 뭉개버렸다.



그리고 오빠가 숙제를 마치고 나오면 함께 소꿉놀이를 하였다.



그도 아니면 새끼를 빼서 팔려고 할머니가 키우던 개를 데리고 노는 일이 나의 최고로 재미있는 일이었다.



“오빠야, 오빠야 우리 메리 직일라 칸다”오빠가 숙제를 하려고 방으로 들어가자 나는 메리와 함께 놀려고



집 뒤로 갔는데 이웃에서 키우던 개가 우리 메리 등에 올라타고는 누르고 있자 혼비백산하여 오빠를 불렀다.



“와 카노?”오빠가 냅다 달려왔다.



“봐라 저 문디 같은 케리가 우리 메레 직일라 칸다아이가 오빠야가 말려라”하고 말을 하자



“가시나야 저건 개가 허름하는거 아이가”오빠는 웃으며 말을 하였다.



“허름이 뭐고?”나는 장독대에 걸쳐 앉아 웃으며 그 광경을 보고 있더 오빠 옆으로 가 같이 앉아 턱을 두 손으로 고우며 물었다.



“새끼 칠라 꼬 카는거 아이가”오빠는 아는 것도 많았다.



“저라모 새끼 낳나?”하고 묻자



“응 가시나야 잔말 말고 보기나 해라”오빠는 웃으며 개의 그런 광경을 보기만 하였다



함참 케리란 녀석이 우리 메리 등위에 올라가 엉덩이를 흔들더니 엉덩이를 마주 대고 있었다.



“오빠야 와 저래 있노?”하고 오빠에게 물었다.



“우리 메리는 가시나 아이가 그라고 케리는 머스마거든 그래 메리 보지에 케리 좆이 박힌 기라”하며 웃기에



“그라몬 계속 저래 있나?”하고 묻자



“아이다 케리가 메리 보지 안에 물만 싸주면 뺀다 아이가”하며 계속 그 광경만 봤다.



“그라몬 사람도 저래 카면 아 낳나?”하고 물었더니



“그래 어른들은 밤에 저런 것 안 하나, 닌 몰랐나?”하고 나를 보며 물었다.



“그라모 어른들도 아무하고나 하나?”신기하여 묻자



“아이다 엄마아빠끼리 하는 거 아이가”하고 대답을 하자 케리가 메리 보지 안에서 좆을 빼더니



케리가 메리의 보지를 빨아주고 메리는 케리의 보지를 빨기 시작을 하였으나 오빠는 계속 그 광경을 봤다.



그리고는 오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난 혼자서 메리와 놀기 시작을 하였다.



“민숙아 니 뭐 하노?”한참 후에 오빠가 방에서 나오며 물었다.



“혼자 논다 아이가 오빠야는 숙제 다 했나?”하고 묻자



“그래 다 했다”하고 말을 하자



“그럼 우리 소꿉놀이 하자”발로 찼고 뭉개었던 조개껍질 중에 쓸만한 것을 고르며 말을 하자



“그래 하자”하고 하기에



“그라모 오빠는 아빠하고 난 엄마 한다 알았나?”하고 말을 하며 조개껍질에 모래를 담아 작은 나무 조각 위에 올리자



“그래”하며 오빠는 깔아 둔 덕석 위에 앉았다.



“여보야 밥 무라”내가 조개껍질에 모래가 든 것이 올라가 있던 나무 조각을 오빠 앞에 놓으면 말하자



“당신도 무라”오빠는 모래가 담긴 조개껍질을 들고 먹는 시늉을 하며 모래를 방바닥에 버렸다.



“여보야 맛 있능교?”하자



“당신이 해 준거면 다 맛있다 아이가”하며 빈 조개껍질을 나무 조각 위에 놓기에



“그라모 인자 잡시더”하며 덕석 위에 눕다가는



“여보야 우리도 아 하나 맨듭시더”하며 난 방금 봤던 케리와 메리의 이상한 광경이 떠올라 마치



메리가 하였던 것처럼 두 팔로 땅바닥을 짚고 엉덩이를 치켜들고 오빠에게 웃으며 말을 하였더니



“개는 아무나 보는데서 하지만 사람은 아무도 안 보는데서 하는 기라”하기에



“그라몬 여보야 우리 방으로 들어갑시더”하며 난 오빠가 쓰는 방으로 갔다.



“자 올라 오소 퍼뜩”난 다시 개처럼 엎드리며 말을 하였다.



“빤스가 있는데 우째 하노”오빠가 혁대를 풀며 말을 하였다.



“아~맞다 빤스 벗어야 카제”하며 치마 안의 팬티를 벗고 다시 개처럼 엎드렸다.



평소와 달리 딱딱하게 변한 좆을 내 엉덩이에 대고 오빠는 개처럼 마구 엉덩이를 흔들었다.



“아프다 오빠야 아프다”오빠의 딱딱해진 고추가 나의 보지에 닿자 아픔에 놀라 엉덩이를 빼며 말하였다.



“아직 안 들어 갔능기라”하며 계속 내 위에서 엉덩이를 흔들어대자



“했다 카고 다음 꺼 하자”하였더니



“좋다 그라몬 그래 하자”하며 나의 보지를 빨았으나 난 메리처럼 엎드린 자시로 오빠의 좆은 빨 수가 없었으나 이상하게 간지럽기만 하였다.



“여보야 간지럽다 아이가”하며 웃자



“가마이 있기나 해라”하며 오빠는 혀를 내 보지에 대고 날름대기만 하였다.



“여보야 오줌 나올라 칸다”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하자



“그라모 요강에 싸라”오빠가 요강을 가리키며 말을 하기에



“알았어예 여보야”하고 요강 위에 앉았으나 소변은 안 나왔다.



“안 나온다”하며 요강에서 내려와 난 메리처럼 오빠의 좆을 빨았다.



그로부터 오빠와 나의 소꿉놀이에는 한 가지의 놀이가 더 추가가 되었고 예전에는 같으면 아무리



소꿉놀이를 하자고 해도 잘 안 하려고 하였던 오빠였는데 그 후로는 오히려 오빠가 더 하자고 하였고



난 신이 나서 오빠와 소꿉놀이를 더 자주하여 개처럼 아이를 만드는 놀이는 아예 제일 중요한 놀이로 변하였다.



그리고 오빠가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고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던 해에도 그 놀이를 계속 하였는데



그해 초봄에 학교에서 와서 소꿉놀이를 하다가는 평소처럼 개가 교미를 하는 놀이를 하였기 시작을 하였다.



“여보야 해라”난 평소와 같이 개처럼 두 팔로 방바닥을 짚으며 말을 하였다.



“알았다 자기야”내 생각으론 아마 제일 빳빳하게 오빠의 좆이 섰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오빠는 내 등을 잡고 좆을 엉덩이 쪽에 대고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을 하였다.



“악! 오빠야 뭐고?”대단한 통증이 밑에서 느껴졌다.



“히히히 인자 진짜로 들어갔다”오빠가 웃으며 말을 하였다.



“아프다 빼라 어서 빼라 아프다 안 카나”하자 오빠는 나의 보지에서 좆을 빼더니 놀라는 표정이었다.



“엄마야 오빠야 고추에 무슨 피고?”난 내가 아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몰라 니 보지에서 묻었다 아이가”하며 휴지로 자신의 좆을 닦더니 나의 보지도 닦아 주었다.



그 후로 몇 칠은 아프고 무서워서 그 놀이를 하자고 하여도 난 안 한다고 하였다.



몇 칠이 지나자 아픔이 살아졌다.



그리고 다시 소꿉놀이를 오빠가 하자고 하자 나는 하자고 하였고 예전처럼 다시 시작을 하였는데 오빠의 좆이



내 보지에 들어와도 조금 아프더니 그 후론 안 아프기에 참았더니 오빠는 좆을 내 보지 안에 넣고 개처럼 마구 엉덩이를 흔들었다.



우리 오빠와 나는 그런 놀이를 거의 매일 하였지만 항상 개처럼만 하였지 다른 방법은 몰랐다.



또 좆 물 역시 안 나왔었다.



또 그렇게 늘 하면서 난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을 하였고 이상한 물도 보지에서 나왔다.



얼마의 날이 지나고 달이 지나자 이제는 오히려 내가 더 하자고 하였다.



안 하면 뭔가 빼 먹은 듯이 허전한 느낌이 들어 공부는 물론 밥도 맛이 없었다.



오빠가 육학년이 되고 내가 사학년이 되던 가을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학교를 마치자마자 집으로 와 팬티도 안 입고 오빠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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